‘한국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부인 엄앵란과의 로맨스 또한 재조명 받고 있다.

4일 오전 2시 30분 신성일은 폐암 투병 중 별세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그의 아내 엄앵란으로 향했다.

신성일과 엄앵란의 첫 만남은 영화 ‘로맨스 빠빠’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신성일은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서 막내아들 역할로 은막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엄앵란도 ‘로맨스 빠빠’에 출연했다. 엄앵란은 당시 이미 ‘단종애사’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기 배우였던 터.

데뷔 이후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쌓아온 신성일은 1962년 ‘특등신부와 삼등신랑’을 비롯해 ‘청춘교실’, ‘가정교사’, ‘말띠여대생’ 등 20여편의 작품을 엄앵란과 함께했다. 특히 신성일과 엄앵란이 함께 공연한 1964년 ‘맨발의 청춘’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신성일을 명실공히 당대 톱배우 자리에 올려놨다.

수 차례 엄앵란과 호흡을 맞추며 그에 대한 호감을 키워간 신성일은 한 매체를 통해 1964년작 ‘배신’촬영 당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연기가 아닌 실제로 입을 맞추며 고백했음을 털어놨다. 이후 두 사람은 쉼없는 영화 스케줄 속에서도 사랑을 키워나갔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 이었다. 1964년 11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장은 초대장이 암거래되는 것은 물론 3천여명에 대라하는 하객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탓에 정작 초청받은 하객이 자리가 없기도 하는 등 해프닝이 이어졌다.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은막 톱스타 두 사람의 만남은 열애와 결혼 그 자체만으로도 뜨거운 관심을 끌었지만, 이들의 연애사가 이토록 열정적이고 불타오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앵란이 유방암을 투병하던 다시 그의 뒷바라지를 손수 맡기도 했고, 엄앵란 또한 폐암 말기였던 그를 살뜰히 돌보며 힘들 때 서로 의지하기도 했으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절반 이상이 별거로 이뤄졌다.

특히 신성일은 지난 2011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동아방송의 아나운서였던 故김영애에게 첫눈에 반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신성일은 자서전 발간 당시 故김영애에 대해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연인”이라며 외국에서 주로 만남을 가졌으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했다는 사실도 직접 공개했다. 낙태 이후 소원해졌던 두 사람은 1년 만에 베를린영화제에서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함께 유럽에서 이별여행을 보냈다.

그는 “김영애가 낙태한 사실을 엄앵란은 모른다. 죄책감 때문에 정관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그는 “나는 엄앵란도 사랑했고 김영애도 사랑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며 “지금도 애인이 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또 다른 얘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신성일은 자서전 발간 후 TV조선 ‘토크쇼 노코멘트’에 출연해 엄앵란과의 결혼 이유로 엄앵란이 임신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엄앵란은 나의 외도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어디서 어떤 여자를 만나도 엄앵란에게 이야기가 전해여 여자랑 단둘이 만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백은 엄앵란과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두 사람의 딸 강수화는 MBC ‘사람이 좋다’를 통해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생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딸로서 지켜본 입장을 전했다. 강수화는 “두 분은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스타일”이라며 “각자 생활습관이 다르다. 각자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멋있게 살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자꾸 애인 이야기하고 언론에서도 말 안 해도 될 것을 말하더라”며 “엄마와 내가 3개월간 밖에 못 나갔다. 엄마, 아빠에게 아빠 애인 있는데 왜 엄마랑 서류상은 그냥 놔두면서 왜 그러냐고 했다. 그냥 깔끔하게 이혼하라고 했다”고 이혼을 권유했었던 사실도 공개했다.

이어 강수화는 “(엄앵란이)배우들이 몇 개월 못 살고 이혼하는 선배들을 봤기 때문에 그런 딴따라의 이미지를 깨겠다, 죽어도 가정은 지켜야 한다더라. 아빠는 이혼하고 싶었을 때의 시기가 넘었다더라. 엄마와는 가치관이 달라서 말이 안 통한다더라”며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야겠다더라. 외롭다고. 자식도 있고 생각해보니 둘이 안 맞고 아버지는 건강하고 엄마는 배타적이니까. 아버지도 외로웠겠구나 싶더라”고 두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신성일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영화인장으로 거행된다. 발인은 오는 6일 예정이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채널A, ‘맨발의 청춘’ 스틸컷